[조선] 문화 : 과거시험 과목에 훈민정음이 있었다? └ 조선



원문 :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007635



이조에 전지하기를, "금후로는 이과(吏科)와 이전(吏典)의 취재(取才)때에는 훈민정음도 아울러 시험에 뽑게 하되, 비록 의리(義理)는 통하지 못하더라도 능히 합자(合字)하는 사람을 뽑게 하라"하였다.-<조선왕조실록>세종28년(1446) 12월 26일

이런 교지에 앞서 10월 10일에 대간(臺諫)의 죄를 훈민정음으로 써서 의금부와 승정원에 보이게 한다. 이로써 공식적 용도에 훈민정음을 적극 사용하기 시작한 것이다. 



세종은 이것으로 그치지 않고 이후 한글을 정착시키려는 실질적인 조치들을 취한다. 그 중 하나가 위와 같이 관리시험에 훈민정음을 시험과목으로 정해 입신양명을 꿈꾸는 사람들이라면 훈민정음의 기본만이라도 반드시 알게 하자는 것이었다.

위에서 말하는 합자란 '초성·중성·종성으로 나누어 합한 연후에야 글자를 이루었다'는 훈민정음의 원리에 따른 것. 즉 뜻과 이치(의리)는 제대로 알지 못하더라도 자모를 합해 글자를 제대로 쓰는 것만이라도 과거시험을 보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알게 하자는 뜻이다. 

이전은 각 관청의 문서처리나 등사, 연락사무 등을 보는 하급관원이다. 그러니 우리들이 과거시험 하면 흔히 떠올리는, 고급관료를 뽑는 그런 시험은 아니다. 그러나 이전이 사회적 위치는 낮지만, 공식적인 문서를 수행하는 사람들이라는 점에서 세종의 이런 조치는 꽤 실질적이랄 수 있다. 

옛날, 과거시험 과목에 훈민정음이 있었다?

세종은 이후에도 훈민정음을 과거시험에 계속 활용한다. 이듬해인 1447년, 즉 세종 29년 4월 20일에는 "이과의 관리를 선발할 때 여섯 가지 과목에 다 합격한 자만을 뽑지 말고 전체 점수가 높은 자를 뽑도록 하고, 함길도 자제의 경우에는 <훈민정음>을 시험하여 합격한 사람에게만 다른 시험을 볼 수 있는 자격을 부여, 이를 다른 관아의 아전을 선발할 때에도 반드시 적용하라"는 교지를 내리기도 한다. 

이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비록 하급 관원을 뽑는 시험이지만 실질적인 문서를 담당하는 사람들은 반드시 <훈민정음>의 기본만이라도 알아야만 관리가 될 수 있게 하자는 것, 즉 한글을 공식 문자로 삼겠다는 세종의 적극적인 의지라고 볼 수 있다.rh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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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훈민정음>을 중시한 세종이 세상을 떠나자, 그 뒤를 이은 문종 때에는 관리 선발 시험에 훈민정음이 채택되지 않는다. 물론, 단종 때에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그런데 세조가 왕위에 오른 후 6년이 경과하자 예조에서 <훈민정음>을 관리 선발 시험 과목으로 채택하자는 보고를 올린다.(<조선왕조실록> 세조 6년(1460) 5월 28일)-책속에서

그리하여 세조 때에는 세종 때처럼 하급 관리의 시험이 아닌 문과에 훈민정음이 공식과목으로 채택된다. 양반의 도를 중시하던 예조의 주청으로 명실상부 고급 관리 시험과목으로 인정받게 된 것이다. 세조 6년 9월 17일과 세조 10년 9월 21일에도 예조의 보고는 계속된다.